2016년 10월 5일 수요일

22. 담벼락

감옥 벽을 호미로 턱턱 내리치는 소리가 그리 크지 않다고는 하나, 목숨을 반나절 남겨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억지로 옅은 잠을 자는 사람들을 깨우기에는 충분하였다. 드레이크가 반쯤은 실신한 상태로 겨우 정신줄을 붙들면서 몇번이고 감옥 벽을 내리치니 그 소리에 함께 갇혀있던 서생들이 한두명씩 눈을 뜨면서 드레이크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더라.
"이보시오, 그 호미는 어디서 났소?"
가까이 다가온 서생 하나가 드레이크에게 조심스레 물었으나 드레이크는 호미를 붙들고 내리치는 것 만으로도 이미 가진 힘을 다 쏟아붓고 있는 상태라 대답할 기운조차 없었다. 서생들이 드레이크에게로 모여들어 감옥 구석을 빙 둘러쌀 때 즈음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감옥 구석의 단단한 흙벽 표면이 떨어져 나가며 벽 안쪽의 큰 돌덩이들과 그 사이사이를 메우고 있는 연한 흙더미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힘을 모두 소진한 듯, 드레이크가 호미를 손에서 떨구고 몸을 축 늘어뜨리니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서생들 중 하나가 드레이크의 옆에 다가와 앉으며 드레이크가 떨군 호미를 집어들고 돌 사이의 흙을 긁어내니 주변의 다른 서생들도 하나둘 씩 깨어진 벽에 들러붙어 손으로 흙을 긁어내기 시작하는데, 이들은 마치 사전에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빠른 속도로 감옥 벽의 흙을 파내었다.
"됐다."
호미를 들었던 서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하였다. 그리고는 뒤로 한걸음 물러서서 발로 돌벽을 대차게 걷어차니 그 단단한 감옥 벽이 와르르 하고 돌덩이를 토해내며 무너져 내리고 그곳에 커다란 구멍이 만들어졌다. 이와 동시에 감옥에 갇혀있던 서생들이 그 구멍을 통해서 일제히 쏟아져 나오며 벌집을 나서는 벌떼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며 달아나는데, 아 이 어찌 한탄스럽지 아니한가, 아무리 감옥을 부수고 나왔다 한들 빠져나온 곳은 결국 관청 내부요 관군들의 소굴 한복판이었으니 달아날 길이 없더라. 벽이 무너지고 서생들이 쏟아져 나오는 소리에 근처에 있던 어용군 병사가 깜짝 놀라 달려와서는 큰 소리를 지르고 근처의 징을 쳐 비상사태를 알리니 관청 내에 진을 치고 있던 수많은 관군들이 몰려와 일대 소란이 벌어지었다. 처음 감옥을 벗어나 달아나던 서생은 어용군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는 관청 안뜰 쪽으로 달아나다 곧바로 어용군 병사들에게 잡히었고 다른쪽으로 뿔뿔이 흩어지며 달아나던 서생들도 어디로도 달아나지 못하고 결국 징 소리를 듣고 달려온 병사들에게 뒷덜미를 잡히어서 매질을 당하니 그 비명 소리만으로도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서생들이 감옥에서 모두 빠져나간 뒤에야 겨우 몸을 가눌 만큼의 기운을 회복한 드레이크는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나 구멍 밖으로 몸을 겨우 빼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어찌 한명도 제대로 달아난 자가 없이 모두 여기 저기서 병사들에게 붙들려 매질을 당하고 끌려가고 있더라. 불행중 다행이라 감옥으로 몰려든 병사들이 저마다 한명씩 달아나던 서생들을 붙들고 몽둥이질을 하며 불이 훤히 밝혀진 관청 앞뜰로 끌고갈 때, 아직도 감옥안에 사람이 남아 있으리라고는 생각치 못했는지 감옥 뒷편이 일순간 조용해지는 틈이 생기니 드레이크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감옥 뒷쪽의 경부 청사 담벼락의 어둑한 곳으로 몸을 숨기었다.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아무래도 경부 청사 중문을 통해야 할 터인데 아무래도 그곳에는 관군들이 포진하고 섰을테니 그리고 달아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매 한가지렷다. 드레이크는 몸에 힘이 빠져 자꾸만 눈이 감기는 것을 억지로 참아가며 어둑한 담벼락을 더듬으며 앞으로 조금씩 나아갔다. 어둑한 곳에 숨어 날이 밝기 전까지라도 무언가 달아날 수를 생각해보자 함이었다. 헌데 아무것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청사 뒷편 담벼락 구석 끝에 딱히 문이라고 부르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하기도 그런, 판자를 덧대어 만든 애매한 문 하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관청 향리들이 업무중에 농땡이를 치며 관청을 드나들기 위해 비밀스레 사용하던 문이련가 하며 그 곳을 슬며시 열고 나가니 아니나 다를까 바로 눈앞에 관청 밖으로 통하는 북쪽 담장이 나타났다.
'저 담만 넘으면 관청을 벗어날 수 있겠구나.'
드레이크는 납덩이 처럼 무거운 다리를 끌고 관청 담장으로 다가가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고는 온 힘을 다해 담장 위로 뛰어 오른다. 어질어질한 머리를 휘휘 내저으며 한쪽 다리를 담장 기와에 걸치고 나머지 다리를 끌어올리려는데 어찌하여 이리도 기운이 없는지 제 몸 하나 가누기도 쉽지가 않았다. 없는 힘을 억지로 끌어모아 몸을 담장위에 올려놓고 보니 저 북쪽 너머 어두운 밤안개 사이로 영산강에까지 흘러드는 광주천이 흐르는 것이 어렴풋이 보이더라.
'살았다.'
드레이크가 안도의 숨을 크게 한번 내어 쉬고는 담장을 넘어 관청 밖으로 뛰어 내리는데 긴장이 풀려버린 탓인지 몸이 말을 듣지 않고 기우뚱 하며 제대로 착지를 하지 못하고 그대로 담장 밖 길가에 털썩 하고 큰 소리를 내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그 소리에 저쪽에서 어용군 병사들이 무슨일인가 하매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더라. 드레이크는 이대로 길가에 쓰러져 있다가는 저 병사들에게 들키고 말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온 몸이 제 말을 듣지 않고 눈꺼풀만이 자꾸만 천근만근 감겨오니 참으로 답답하고 애석하였다.
"거기 누구냐."
어느새 다가온 어용군 병사들이 횃불을 들이밀며 담장 아래 쓰러진 드레이크를 비추며 묻는다. 허나 드레이크는 이미 반쯤 정신을 잃은 상태인데다 말을 할 힘마저도 없어 그저 바닥에서 꿈틀대고만 있을 뿐이었다. 병사들 중 덩치가 큰 자가 쓰러져있는 드레이크에게 다가와 뒷덜미를 잡고 억지로 일으켜 세우니 마치 물에 젖은 빨랫감마냥 축 늘어져 있다가 손을 놓으니 다시 픽 하고 쓰러진다.
"이런 곳에 쓰러져 있는 것이 수상헌데."
병사들은 정신을 반쯤 잃고 제 몸도 못가누고 있는 드레이크를 보고 수상하다 생각하여 관청 안의 어용군 본부로 끌고 가자며 합의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그들을 불러세우는 소리가 들리었다.
"병사 나리들."
그들이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보니 그 곳에는 행색이 초라한 한 사내가 등에 커다란 봇짐을 지고는 굽실거리는 태도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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