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서울에서 남쪽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곳, 남부의 서쪽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너른 지방 전라에는 서해안의 뻘을 끼고 어업을 일로 삼는 목포라는 이름의 큰 고을이 있었다. 목포의 젖줄, 영산강 줄기가 서해안으로 흘러드니 그 경관이 멋드러지게 펼쳐져 보이는데 그 모습이 마냥 평화롭지만 않고 오히려 호된 세상에 흘리는 백성들의 눈물같아 서글프더라. 휘어져 흐르는 눈물 강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나지막한 유달산 중턱에는 대궐같은 저택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위세가 어찌나 대단한지 고을 관청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모두가 잠든 이 야심한 한밤중에 훤히 밝힌 등불들이 산중 저택으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비추고 있었으니 그 모습이 마치 한 마리 용이 불붙은 꼬리를 늘어놓은 듯 했다. 밤은 깊었고 밤 까마귀 소리만 적막하게 들리는데 난데없이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유달산 꼭대기까지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이에 놀란 밤 까마귀들이 푸드덕 하고 날아가 버린 뒤로 한참 동안 문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리고서야 안쪽에서 슬며시 인기척이 느껴졌다.
"거 뉘시오?"
철판 같은 나무 대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리고 그 안에서 검은 옷차림에 키가 일곱 자는 되어 보이는 거구의 사내가 횃불을 내 비추며 나타나 물었다. 문 앞에는 십 수명의 장정들이 진을 치고 서서 무언가 항의하려는 듯 얼굴을 불그락 거리며 서 있었다.
"빈센트 어르신 계시오?"
장정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밤이 깊었으니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찾아오시오."
거구의 사내는 살짝 열려 있던 대문을 다시 닫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장정들의 우두머리 사내가 닫히려는 대문 사이로 손을 불쑥 집어넣어 붙잡고는 다급하게 대꾸했다.
"급한 일이오, 어르신을 뵙게 해주시오!"
잠시 후 저택 안채의 창이 열리고 그 안에서 점잖게 생긴 노인이 잠옷 차림의 모습을 드러내자 안뜰에 모여있던 장정들이 화난 얼굴로 무언가 따지려고 노인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섰다. 그러자 예의 그 거구의 사내가 횃불을 들지 않은 다른 쪽 손으로 그 장정들을 저지하니 그 기세에 눌려 장정들은 스을쩍 뒤로 물러서며 그 자리에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오늘 대낮에 우리 죽교패가 목원패 놈들에게 기습을 당했소. 헌데 간신히 그 목원 패거리 놈 하나를 붙들어 족치니 빈센트 어른께서 뒤를 봐주었다고 하던데, 이거 너무하는 것 아니오!"
"거, 똑같이 백성들 피를 빨아대는 껄렁패 놈들끼리 옳고 그름을 따지려 하니 그야말로 우습구나."
안채의 노인이 수염을 긁으며 대꾸하니 그 목소리가 점잖고도 권위적이었다.
"내 아무리 너른 지방을 주름잡는 천하의 플럼가문의 수장이라고 하나 태생이 깡패고 건달이라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는지라. 헌데 어제 목원패 두령놈이 돈을 이백 금이나 싸 들고 와서 조만간 싸움이 있을 터이니 힘을 빌려 달라 하기에 내 수하에 장정 몇을 보내 도와주었기로서니 그게 무슨 잘못이고 무어가 너무한단 말이더냐!"
노인의 말에 앞에 나섰던 장정이 말문이 막혀 버벅거리자 바로 뒤에 있던 다른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따지듯 말하는 것이었다.
"좋소, 그러면 우리 죽교패가 삼백금을 가져다 드리면 그 망할놈의 목원 패거리 놈들을 묵사발 내어 주실 수 있겠소?"
사내의 말에 함께 온 십수명의 장정들이 옳소, 옳소 하며 호응한다.
"허허 그것 참 구미가 당기는 일이로다. 좋다, 삼백금이면 내 너희들의 뒤를 보아주마."
노인이 수염을 쓸며 웃자 장정들은 자기네들끼리 잘 되었다며 의기를 다지며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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