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7일 수요일

3. 패싸움

이 때 시장 안쪽에서 시끌벅적한 소란이 일었는데 시장 한 복판에서 고을 건달 패거리들끼리 큰 싸움이 붙었던 것이었다. 이놈아 저놈아 소리치는 가운데 상점 좌판 간판이 하늘 위로 날아다니는데 애꿎은 상인들만 고래 싸움에 등터져라 바닥에 주저앉아 어이쿠야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온 동네 먼지를 다 일으키며투닥거리는 패싸움판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한쪽 건달패는 머리에 붉은 두건을 둘렀고, 다른 한쪽 건달패는 머리에 푸른 두건을 두른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패거리들이 고을에서 사납기로 유명한 청건 죽교패와 적건 목원패렸다. 이 난장판 속에서 시퍼렇고 시뻘건 장정들이 양쪽으로 갈리어 치고 받고 싸우는 모습이 마치 장기판의 말들을 놓고 싸우는 듯 하여 어느 쪽이 유리하고 어느 쪽이 불리한지 싸움판이 훤히 보이더라.

시장 한 켠 바깥이 내려다 보이는 객사 높은 곳에 점잖은 차림의 노 신사 하나가 주변에 검은 장정들을 끼고 앉아 그 싸움판을 내려다 보고 있었으니 그가 바로 세상 천하에 당할 자가 없다고 알려진 목포검계의 수장이자 너른 지방의 큰 어르신 빈센트 플럼 이로다. 때로는 껄껄대며 주먹다짐을 구경하고 때로는 혀를 차며 애꿎은 상인들을 걱정하니 시장 안에 모든 이가 빈센트의 발아래 춤을 추고 광대 짓을 하는 큰 놀이판 같았더라. 헌데 그가 신나게 한판 소란을 구경하며 맑은 술 한잔 꺾어 마시려는데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며 입술 바로 앞에서 술잔을 멈추었다.
"훼방꾼이 끼었구나."
그는 멈추었던 술잔들 휙 마셔 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객사 안으로 사라져 버리었다.

"물렀거라, 훠이!"
푸른 두건의 사내들과 붉은 두건의 사내들이 하나 둘 씩 고꾸라지고 이제 눈으로 세어봐도 얼추 너댓 명 남았을 무렵 싸움판 주위로 몰려든 구경꾼들 사이를 비집고 한 병졸 하나가 목봉을 휘두르며 길을 내는 것이 아닌가.
"물러서라 일렀다, 훠이!"
쌈 구경에 혼이 팔려 뒤에서 날아오는 목봉을 알아채지 못한 구경꾼 하나는 뒷통수에 크게 한방 딱 하고 얻어맞고는 속으로 궁시렁 거리며 길을 비켜선다. 군중 사이로 좁디 좁은 길이 터지니 그 길을 따라 건장한 체구의 한 사내가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는 바로 관청의 고위 관료 저스틴 경감이더라.
"물렀거라, 훠이!"
싸움판이 순식간에 쥐죽은 듯 조용해지고 한참 주먹을 주고 받던 두 패거리의 잔당들이 뭔 일인가 싶어져 싸움을 멈추고 길을 터는 병졸 쪽을 쳐다보는데, 마침 제일 앞 자리에서 구경하던 구경꾼 하나가 어깨죽지에 목봉을 맞고서는 옆으로 슬쩍 길을트며 바닥에 몰래 침을 퉤 뱉으며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욕을 한다.
"이런 빌어먹을, 지가 관리면 관리지 왜 사람을 물럿거라 하매 몽둥이질을 하는거야."
저스틴 경감이 겨우 틈이 난 군중들 사이로 몸을 비집고 들어가 난장판이 벌어졌던 싸움판 한 복판에 서서 아직 쓰러지지 않은 패거리 잔당들을 보며 꾸짖는다.
"이 껄렁패 놈들을 모두 잡아다 관청으로 끌고 가라, 반항 하는 놈들은 그자리에서 목을 쳐라!"
저스틴 경감의 말이 떨어지자 뒤 따르던 병졸들과 하급 향리들이 예이 하고 싸움판 한 복판으로 나서는데 구경꾼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기가 벅찼는지 겨우 겨우 한 명씩 군중 틈새로 빠져나오는 모습들이 참으로 꼴사나웠다. 이 때 뒤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나더니 좁디 좁던 군중 틈새가 쩌억 하고 갈라지며 구경하던 상인들이 하나같이 일사분란하게 길 양쪽으로 붙어 서며 머리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빈센트 어르신 납셨습니까요."
양쪽으로 갈라져 깊숙하게 인사를 하는 군중들 끝에는 검은 옷의 장정들을 거느린 목포검계의 빈센트가 부채를 살랑거리며 다가오는 것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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