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8일 목요일

4. 기 싸움

고것 참 상황이 우습고도 묘하다. 나랏일을 맡아보는 관청의 관리께선 사람들 부대끼며 겨우겨우 벗어난 길을, 한량이요 건달패의 대장노릇 하는 자는 온동네 사람들에게 어른 대접 받으면서 도도하게 등장하니 이 어찌 우습지 아니한가! 상황이 이리 거꾸로 된 것이 어찌 보면 백성들의 피와 살을 갉아먹는 나랏님들의 노략질 아닌 노략질 때문이니 이야말로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싶더라.
"이보시오, 경부장 나리."
터진 길을 따라 주변 사람들에게 꾸벅 꾸벅 인사를 받으면서 걸어오는 노 신사가 경감에게 말을 거니, 잠잠해진 싸움판에 이건 또 웬 놈인가 싶어 저스틴이 스을쩍 돌아본다.
"거 동네 청년들이 끓어오르는 혈기를 다스리지 못하고 다툼질 잠깐 한 걸 가지고 관청으로 끌고 가라 허니 좀 심하지 않소. 그만 너른 아량으로 이번 한번 봐 주시는게 어떻겠소."
"플럼가의 수장 빈센트 아니신가."
얼핏 보아도 경감의 나이가 스무 살은 어려 보이나, 그의 말에는 위 아래가 없었다.
"그대가 비록 알아주는 검계의 수장이라 해도 결국 깡패 집단의 우두머리일 뿐 아닌가. 나에게는 그런 것이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여럿 겪어 보아 잘 알 터이고, 언젠가 나에게 한번만 제대로 걸리시오. 내 그대로 당신을 옥에 가두어 사흘 밤 낮 노동을 시켜 주린 배를 부여잡고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게 해 줄 터이니. 아니지, 너른 지방에서 가장 큰 검계의 수령이라면 적어도 목을 베어 관청 대문 앞에 효시 정도는 해 주어야 검계 큰 어르신의 체면에 걸맞으려나."
"허허 젊은 분이 언제나 기개가 넘치시는 구려. 만에 하나 나에게 그럴만한 일이 생기거든 내 발로 관청의 경부를 찾아가리다. 허나 지금은 그 때가 아닌 듯 싶소. 그러니 이번 한번 못본 척 넘어가 주는 것이 어떠하겠소."
송곳같은 타박에 발끈할 만도 하건마는 한치도 흔들림이 없는 저 깡패 놈의 말투를 보고 있자니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저스틴이었다. 허나 겉으로 흥분 티를 내는 것이 기싸움에 지는 것이리라 목구멍에서 솟아나려는 욕지기를 속으로 눌러 넣고 또 우겨 넣으며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이 놈들은 어차피 시장 상인들의 피고름을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놈들이오. 이들이 시장에서 행패를 부린 죄와 상인들의 집기를 부순 죄 그리고 관내의 질서를 어지럽힌 죄에 대해서는 벌을 받는 것이 도리 아니겠소. 그러니 나는 이들을 관청으로 끌고 가야 하겠소."
저스틴 경감의 단호한 말에 별안간 노 신사의 온화한 미소가 얼굴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에 얼음장 처럼 차가운 표정이 이는데,
"도리라고 하시었소?"
그 한마디에 주변 구경꾼들이 순식간에 소름이 끼치면서 분위기가 서늘해 지는 것이었다.
"관청의 관리라는 자가 상인들의 피고름을 빨아제끼고 법규에도 없는 잇속을 챙기는 것은 어디의 도리인고."
"뭣이라!"
노 신사의 그 한마디에 경감의 목구멍은 터져나오는 욕지기를 더이상은 버티지 못하겠다고 아우성을 친다. 미간에는 주름이 너댓줄이나 잡히었고 콧잔등은 위를 향해 솟을 만큼 솟았으며 입술이 벌어지어 그 속에 어금니가 서로 짖이길듯 뿌드덕 거리니, 이미 손은 옆에 서 있던 병졸의 목봉으로 뻗었는데 분하게도 그 순간에 눈에 들어온 것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 치고 있는 말단 향리 놈이 아닌가. 이 깡패놈이 나를 골리려고 일부러 향리놈이 짓을 내가 한 것 처럼 말했구나 하고 뒤늦게 깨달아 본들 이미 병졸의 허리춤에서 목봉을 빼어들었으니 무라도 내리쳐야하는 상황이라.
"이 천하의 몹쓸 노옴!"
경감이 뽑아든 목봉을 비잉 돌려 뒷걸음질 치는 향리 놈에게 겨누어 따악 하고 내리치니 벼락같은 몽둥이질에 몸을 빼던 말단 향리가 어이쿠 하고 엎어진다. 경감은 향리의 뒷덜미를 잡아 끌며 서너대 더 몽둥이질을 하자 향리가 살려줍쇼 하면서 바닥을 기며 싹싹 빈다. 시장 바닥 구경꾼들이 아이고 고것 쌤통이다 하면서 몽둥이 소리가 딱 딱 거릴때마다 얼쑤 어얼쑤 흥을 돋우었다. 몇차례 몽둥이 찜질이 이어지고 경감의 등 뒤로 새액 새액하는 숨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무래도 화산처럼 터져나온 울화를 이곳에 다 풀어제낀 모양이었다. 경감이 몽둥이를 시장 바닥에 뎅그렁 내던지고는 빈센트를 향하여 돌아서며 말한다.
"오늘 건은 내 못본 것으로 하겠소."
경감이 무리를 빠져나가자 병졸들이 허둥지둥 그를 쫒아 가고 그 뒤로 매맞은 향리가 절뚝절뚝 따라가더라. 그 모습에 시장 구경꾼들이 껄껄대며 웃어제꼈다. 싸움판에서 제 발로 서 있는 몇 안되는 두 패거리 장정들이 고꾸라진 자기네 사람들을 부축하고 일으켜 세우는데, 게중에 한 사내가 빈센트에게 다가와 허리를 꾸벅 숙인다.
"감사합니다요, 어르신."
사내의 말에 서 있는 놈, 주저앉은 놈, 일어서는 놈, 부축하는 놈 전부 노 신사에게 꾸벅 허리를 숙인다.
"자네들 의뢰비는 이걸로 퉁치세."
노 신사가 군중 밖으로 휘익 도아서며 말하자 장정들이 다시 한번 그의 등에 대고 허리를 꾸벅 숙이며 공손하게 대답한다.
"이예, 아무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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