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일 화요일

5. 망월관

목포 관청의 경부장 저스틴 경감이 책상앞에 곧게 앉아 술법에 관련된 서책을 읽고 있는데 밖에서 병졸 하나가 다급히 그를 부르는 것이었다.
"경감 나으리, 행부장 토티오 행감께서 급히 전갈을 보내어 왔습니다요."
경감이 창문을 슬쩍 열어 바깥을 보니 병졸 하나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더라.
"무슨 급한 일이길래 이리도 헐떡이며 온 게냐."
병졸은 숨을 헐떡 거리며 침을 크게 한번 꾸울꺽 삼키고서야 겨우 입을 뗀다.
"행부장 토티오 행감께서 오늘 저녁 논의할 것이 있으니 망월관에서 술한잔 함께 하자고 하셨습니다요."
병졸의 말에 저스틴 경감이 보던 서책을 탁 하고 세차게 덮고 언성을 높이며 말하였다.
"고작 술한잔 하자는 약속 때문에 관청의 병졸을 이리도 급하게 보냈단 말이더냐!"
경감은 소매 안쪽에서 일금짜리 묵직한 금전을 꺼내어 병졸에게 던져주며 답하였다.
"잘 알겠으니 자네는 이걸로 시장에 가서 목이라도 축이게."
헐떡이던 병졸이 어이쿠야 하면서 바닥에 떨어진 금전을 주워 몇번이고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는 잽싸게 뒷쪽으로 사라진다. 경감은 크게 한숨을 한번 내 쉬고는 창문을 거칠게 닫아버리었다.

저녁 무렵 경부장 저스틴 경감이 경부 향리 하나를 데리고 관청을 나서는데 행부 향리 하나와 병졸 둘이 잰 걸음으로 다가와 경감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다.
"경감 나으리, 행감께서 말을 준비하셨으니 망월관까지 타고 가시지요. 양을산 초입까지는 이 병졸 둘이 호위할 것입니다."
행부 향리의 말에 저스틴 경감이 눈을 흘기며 엄한 목소리로 대꾸한다.
"됐다, 치우거라. 무슨 귀한 짓을 하러 간다고 호위까지 거느린단 말이냐. 술 한잔 하러 가는 것이 나랏일이라도 된다더냐. 나는 슬렁 슬렁 바람이나 쐬면서 걸어가겠다."
경감이 대동한 경부 향리를 향해 어서 가자 하며 손을 휘 내젓자 그가 앞장서며 길을 안내한다. 졸지에 쓸모없게 된 말과 병졸들을 보며 행부 향리는 머리를 긁적이며 되돌아가더라.

관청의 동쪽으로 한참을 걸어 지저분한 시내를 벗어나자 목포의 북쪽으로 나지막히 뻗어있는 양을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산 초입에서부터 이어지는 단정한 산책길을 따라 촘촘히 호롱불이 밝히어져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고, 선선한 밤바람이 산 위에서 불어내려와 향긋한 술냄새를 실어오는 것이 참으로 멋드러진 곳이라. 경감이 경부 향리의 길 안내를 따라 한참을 걸어올라 산 중턱에 이르니 좌우로 솟은 능선 사이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저수지가 달빛을 받으며 반짝이고 있더라. 달이 걸린 저수지 한쪽 편으로 툭 튀어나온 지형을 깎아 아롱 다롱 불빛이 반짝이는 화려한 건물을 세워 올렸으니그 곳이 바로 목포의 제일가는 요정 망월관이었다.
"수고하였다. 여기부턴 혼자 갈테니 너는 이만 돌아가거라."
경감이 소매에서 금전 하나를 꺼내 향리에게 건네주자 향리는 허리를 꾸벅 굽히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갔다. 경감이 홀로 저수지 주변길을 돌아 망월관 대문앞에 이르자 입구에서부터 화려하게 차려입은 기녀들이 달려나와 경감을 맞는다. 온갖 분냄새를 풍기며 들러붙는 기녀들을 경감이 한팔로 휘 내저으며 물리치니 이내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서는가 싶다가도 또다시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들러붙는다. 이 때 새하얀 비단 저고리에 새하얀 비단 치마를 두른 귀해보이는 여인이 마당으로 나서며 꾸벅 인사를 한다.
"어서 오십시오 경부장 나리. 행부장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언뜻 보면 이제 막 미모가 무르익는 꽃다운 처녀처럼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만 보이는 세세한 주름과 족히 마흔은 넘어야 드러난다는 화류계의 관록을 안개처럼 잘 숨겨온 여인이었다.
"행감께서는 안쪽에 계시니 이리로 드시지요."
여인이 정중하고 위엄있는 목소리로 안내를 하자 경감이 소매를 붙들고 있던 여우같은 기녀들의 팔을 떼어내며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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