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0일 수요일

10. 노엄 선생

대 학당 바하이트의 강의동 별채에 노엄 선생이 왔다는 소식에 학당의 모든 학자들과 학생들이 그 분을 뵙고자 그 곳으로 몰려가니 당내는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눈에 띄지 않고 그저 썰렁하였더라. 제임스 노엄 선생이라 하면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세상의 지도자감으로 언급되며 정치학의 신 지성으로 떠오르는 불세출의 노학자렷다. 서고에서 책과 씨름하느라 한발 늦은 드레이크도 노엄 선생의 강의를 듣기 위해 바쁜 걸음으로 강의동 별관을 향하던 중 서고 중문을 지날 때에 저만치에서 서너명의 학생이 서둘러 강의동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드레이크는 그들도 자기처럼 한발 늦게 노엄 선생을 뵈러 그 곳으로 향하는 중이리라 생각하였다.
'그분 강의를 듣는 것은 고사하고, 멀찍이서 그분 얼굴이라도 뵐 수 있으려나 모르겠구나.'
조급한 마음으로 강의동으로 향하는 학생들의 뒤를 쫒는데 돌연히 앞서가던 그 학생들이 멈춰서서 자기들끼리 무언가 심각하게 논의를 한다. 드레이크는 별 생각없이 그들을 지나쳐 가다가 그들이 무언가 작고 반짝이는 것을 품속에 챙겨 넣는 것을 보았으나 못 본 척 하고 그들을 지나쳐 강의동으로 통하는 중문을 지났다. 강의동 대문 앞에는 이미 많은 학생들과 학자들이 무리를 이루며 북적대고 있었으니 사람이 많아 차마 강의동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노엄 선생이 강의하는 모습이라도 보고자 까치발로 목을 빼며 주변을 맴돌던 이들이더라.
"좀 지나가게 해주시오."
드레이크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서려 하자 미리 와 있던 사람들이 대뜸 화를 내며 대꾸한다.
"거 밀지 마시게, 우리도 자리가 없어 이리 서성이는 것이 안 보이는가."
도저히 강의동 안으로 들어설 수 없겠다 싶어 돌아서려는데 좀 전에 지나쳤던 학생들이 강의동 바깥쪽 담벼락을 따라 뛰어가는 것이 아닌가. 드레이크는 그제서야 그들이 강의동 뒷편의 낮은 담을 넘어 별채 쪽으로 가까이 가려고 모의를 하였구나 하고 깨닫고는 그들의 뒤를 따라간다. 담장 안쪽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이제 곧 노엄 선생의 강의가 시작될 것이라는 안내관의 목소리렷다. 드레이크는 서둘러 앞서간 학생들의 뒤를 쫒았으나 어찌나 발걸음이 빠른지 강의동 측면의 담벼락 모퉁이를 돌 때쯤 그만 그들을 놓치고 말았다.
'뒷편까지 가서 담을 넘으면 노엄 선생의 초반 말씀을 놓치겠구나.'
다급한 생각에 드레이크는 측면 담벼락 중에 그나마 낮은 축에 속하는 모퉁이 담장을 골라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났다가 단숨에 뛰어오른다. 겨우 기왓장 아래에 손을 집어넣고 바둥거리는 발끝을 담벼락 기왓장 위에 올려놓으니 겨우겨우 몸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담장을 올라 강의동 안쪽을 들여다보니 담장으로 걸쳐 자란 커다란 나무가 보이매 그는 그 나뭇가지 중 가장 굵은 것을 찾아 그 곳에 매달려 발을 더듬어 자리를 살핀다. 옆으로 뻗어 자란 굵은 나뭇가지를 골라 그 위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그야말로 명당이다. 강의동 뜰 안으로 북적이는 사람들의 머리가 훤히 내려다 보이면서도 별채 안쪽 마루에 마련된 강단까지 훤히 들여다 보이더라. 강단을 끼고 곧게 앉아있는 저 고매한 노학자께서 바로 이 시대의 지성이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개혁의 우상인 제임스 노엄 선생이렸다. 드레이크는 벅차오르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그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새겨 들으리라 마음먹었다.
"세상에 무조건 옳은 일이 어디 있겠으며, 무조건 그른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고로 옳고 그름이라는 것이 말하는 사람의 마음에 세운 기준에 따르는 것이거늘, 그렇다 하면 그 누구의 마음이 가장 옳다 할 수 있겠습니까."
노엄 선생의 근엄한 목소리로 강의가 시작되었다. 강의동에 모여든 사람들이 눈을 반짝이며 그의 목소리에 집중을 한다.
"마음의 기준이라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복잡한 것입니다. 아무리 정의를 위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하여도 사람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이 유혹에 시달리게 마련이며..."
진중한 가운데 노엄 선생의 목소리가 장내로 퍼져 나가니 한 마디도 빠짐없이 받아 적으려는 자, 매 단어 하나하나 마다 고개를 끄덕이는자, 손가락으로 턱을 어루만지며 사색에 잠기는자, 모든 이가 하나같이 그의 위엄찬 목소리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서두가 끝나고 강의가 본론으로 접어들어갈 때쯤 사람들은 이미 노엄 선생의 강의에 깊이 빠져드니 그야말로 세기의 지성이요 새로운 세상의 지도자 감이라. 드레이크도 반드시 공부에 매진하여 노엄 선생에 견줄만한 위대한 학자가 되리라 마음먹고 있는데  별채 뒤쪽에서 소소한 움직임이 눈에 띄니 좀 전에 별채 뒤쪽으로 담벼락을 따라 뛰어가던 그 학생들이 아닌가. 높은 나뭇가지에 자리하고 앉아 내려다보니 그들의 움직임이 소상히 내려다 보이는데 그들 중 둘은 담벼락 아래서 서로 어깨를 마주하고 허리를 굽혀 평편하게 하고 나머지 하나가 등을 밟고 올라서서 별채 뒷창을 통해 노엄 선생의 뒤쪽을 바라보며 품 안에서 무언가를 번쩍이는 것을 꺼내 드는데, 글쎄 그것이 다름 아닌 날이 시퍼렇게 선 단검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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