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7일 수요일

12. 굶주리는 사람들

저녁 무렵 목포항에 큰 고깃배가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더라. 이들 대부분은 며칠동안 먹지 못해 피골이 상접한 모습들이라. 혹시라도 너무 작아 쓰지 못하고 버리는 생선이나 하다 못해 손질하고 내다 버리는 내장이라도 얻어갈 수 있으려나 하여 주변을 서성이며 눈치를 보는 자들이렷다. 배가 항에 닿자 관청 향리의 지시하에 일꾼들이 열을 맞추어 배에 올라 생선들을 들어 나른다. 일꾼들이 배에서 내린 생선들은 각 잡힌 나무 상자에 차곡차곡 쌓여져 항구 한쪽 귀퉁이에 쌓이니 어른 다리만큼이나 굵직한 큰 생선에서부터 애기 손가락 만큼 조그만 피래미까지 하나도 빠짐 없이 크기에 맞추어 여러 상자에 나누어 담기고 밀봉이 된다. 이에 혹시나 찌꺼기 생선이라도 챙길 수 있으려나 하며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던 굶주린 이들은 이내 실망의 표정이 역력하더라. 이렇게 봉해진 상자마다 시뻘건 표식이 있는 허연 종이를 붙이는데 그것이 바로 목포 관청의 슈미트 관청장의 직인이더라.
"큰상자 열 두개와 중간 상자 스무개 그리고 작은 상자 일곱올시다."
일꾼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관청 향리에게 이르자 향리는 소매에서 금전과 은전 몇개를 꺼내어 건넨다.
"이보시오, 행사 나리. 오늘 하선 작업한 인부가 모두 여덟이오. 헌데 이건 너무 값이 적지 않소이까. 이걸로 우리들 목 한번 축이고 나면 남는 것이 없겠소."
일꾼 대표의 불만에 관청의 향리가 대뜸 건네려던 금전을 도로 홱 거두며 화를 낸다.
"이 놈이 이마저도 값을 쳐주는 것에 감사할 것이지 뭔 불만이 그리 많어. 이거라도 받고 썩 꺼질테냐 아니면 나랑 같이 관청 병부로 들어가 병부장 나리 앞에서 잘잘못을 따져 볼테냐."
관리의 말에 일꾼 대표는 아이고 아닙니다요 하며 돈을 받아든다. 그들의 얼굴에는 티를 내지 않으려 하나 어쩔 수 없이 솟아나는 불만의 표정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그들이 돈을 나누어 가지고 투덜대며 물러가자 잠시 후 관청 병졸들이 말 수레를 끌고 와서는 상자를 모두 싣고 목포 관청쪽으로 먼지를 내며 사라졌다. 그 모습을 애달프게 쳐다만 보고 있던 굶주린 이들과 수레를 힘차게 끌고가는 살찐 말이 참으로 대조적으로 보이더라.
"내 이대로는 도저히 못살겠소. 당장에 관청으로 가서 먹을 것을 좀 내어달라고 청해야겠어."
어깨를 늘어뜨린 채 뿔뿔이 흩어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비쩍 골은 다리를 드러낸 사내가 나서며 말하니 그 옆에 소매가 거덜난 사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만류한다.
"어이고, 얼핏 보아허니 이곳 토박이가 아닌 듯 헌데 내 말 들으시오. 괜히 갔다가 몽둥이 찜질이나 당하고 약값 치른다고 가족들 고생시키지 말고 나랑 같이 유달산에 칡뿌리라도 찾아보러 가세."
"유달산?"
비쩍 골은 사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무언가 생각난 듯 말을 잇는다.
"그 무엇이냐, 내가 저 남쪽 순천에서 가난을 피해 이곳으로 흘러든지 얼마 되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그 유달산에 너른 지방을 주름잡는다는 분이 계시다던데 그 분께 손을 좀 벌려보는게 어떨까 싶소."
"빈센트 큰 어르신 말씀이오?"
소매가 거덜난 사내가 입을 실쭉거리며 대꾸한다.
"그 분이야 높은 사람 낮은 사람 차별하지 않고 무엇이든 청하면 들어주는 훌륭한 분이시라고는 허나 반드시 돈 되는 일만 하는 분이시오. 그 분께 부탁할 돈이 있었다면 먹을 것을 사지 무엇 한다고 그 곳에 간단 말이오?"
소매가 거덜난 사내가 손을 내저으며 먼저 자리를 뜨자 비쩍 골은 다리의 사내는 주린 배를 문지르며 해 지는 유달산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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