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지방 목포 관청 부근에 대궐 처럼 솟은 슈미트 관청장의 사택으로 수레들이 요란하게 먼지를 내며 모여드는데, 관청에서 일을 해야 할 향리들이 어찌하여 관청장의 사택에서 분주하게 오가며 일을 거들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마는 어찌 되었건 관청의 향리들이 사택에 도착한 수레에서 커다란 나무 상자들을 끌어내리고 있었으니 상자마다 관청장의 직인이 찍힌 종이로 잘 봉인이 되어 있더라. 향리는 끌어내려진 상자의 봉인을 뜯어 장부 뒷쪽에 풀로 붙이고는 장부 한켠에 잘 도착하였다는 뜻으로 보이는 글자들을 써 넣는다. 온갖 수레들로 북적이는 관청장 사택의 안채에서 두 명의 관리가 술상을 보아 놓고 장부를 열심히 검토 하고 있었으니 높은 자리에 앉은 이가 바로 이 집의 주인 슈미트 목포 관청장이요, 낮은 자리에 앉은 이가 목포 관청 행부장인 토티오 행감이더라. 거만한 표정으로 장부를 검토하던 슈미트 관청장이 방 옆으로 나 있는 창문을 거칠게 열어 젖히며 바깥에서 일을 보고 있는 행부 향리에게 소리친다.
"오전에 도착하여야 할 수레가 둘이나 모자라지 않는가!"
관청장의 호령에 행부 향리가 하던 일을 접어두고 안채 마당 앞으로 나와 굽실거리며 해명한다.
"그것이 말입니다요, 하나는 북항 어업 단지 지주로 부터 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연산 상공 단지 지주로 부터 오는 것이온데, 북항에서 오는 수레는 유달산 검계 플럼 패거리 놈들에게 약탈을 당하였고, 연산 단지에서는 수레가 아예 오질 않았습니다요."
향리의 말에 토티오 행감이 인상을 찌푸리며 관청장에게 아뢴다.
"연산 단지라면 저스틴 경감이 손을 댄 곳입니다. 하기야 연산 단지 지주 입장에서는 내야 할 세금을 다 내었으니..."
토티오 행감의 말에 관청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창문을 거칠게 닫고는 술을 크게 한잔 들이킨다. 잔을 탁 하고 내려 놓으며 수염에 묻은 술을 손으로 슥 닦더니 행감에게 묻는다.
"북항에서 오는 수레는 어찌 된 건가."
"유달산의 빈센트 플럼은 너른 지방을 통틀어 수만명의 수하를 거느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최근 들어 그 세력을 더 늘려가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는 쉽게 손 댈 자가 아닙니다, 숙부님."
슈미트 관청장이 술 주전자를 들어 술잔에 새로 술을 붓다가 갑자기 주전자를 홱 집어던지며 화를 낸다.
"병부장은 아직까지 오질 않고 무엇하는게야!"
벽에 부딪친 술 주전자에서 쏟아진 술이 토티오 행감의 얼굴에 튀니 토티오 행감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눈치를 본다. 이 때 안채 문이 조심스레 열리며 왜소한 체구에 허리가 구부정한 사내가 스을쩍 방 안 상황을 살피며 들어서는데, 이 자가 바로 너른 지방 목포의 바다와 육지의 안위를 책임지는 목포 해군과 육군의 총 지휘자이며 병권의 소유자 목포 관청 병부장 마우킨 이렷다.
"저... 제가... 좀 늦었습니다, 아버지."
아무리 보아도 무관같지 아니한 체격에 문관으로 보기에도 그 태도와 언변이 어설퍼 보이는데 어찌 이 자가 병부장이라는 중책에 앉은 것인지 모를 일이로다.
"어디서 무얼 한다고 이제서야 얼굴을 들이미는 것이야, 이 모자란 것!"
관청장은 마우킨 병부장에게 대뜸 화를 내고 토티오 행부장은 고개를 아래로 숙이며 한숨을 쉰다. 나라의 관리가 탐관 오리들 뿐인 것으로 모자라 병권을 쥐는 중책에 병법은 고사하고 군사에 대한 일견도 없는 허약한 자식을 세워 놓으니 그야말로 이 나라가 얼마나 부실하고 부패하였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든 상황이 아니던가. 마우킨 병부장은 잔뜩 주눅이 든 채로 토티오 행감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조용히 앉아 눈치만 하염없이 보더라.
"그래, 그 건달 노인네는 손대기 힘들다 치더라도, 경부장 그 놈은 무엇을 믿고 그리 날뛰는 것이야."
슈미트 관청장이 손을 뻗어 마우킨 병부장의 술상에 있는 술주전자를 가져와 술을 부으며 묻는다. 이에 토티오 행감이 관청장의 손에서 술주전자를 빼 들고는 대신 마저 술을 부어 주며 대답한다.
"그 것이 뒤를 캐어도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깨끗합니다."
"거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 뒤 봐주는 사람도 없이 이 목포바닥에 굴러들어왔단 말인가."
토티오 행감이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대꾸한다.
"아무래도 이 놈이 진짜로 등용시험을 치뤄서 부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배후가 전혀 없는 것도 그렇거니와 두 달전에 이 곳으로 부임하였으니 시기적으로도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것 같고 말입니다."
관청장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토티오 행감이 스을쩍 말을 돌린다.
"등용 시험이라는 것이 백성들 휘어 잡기에 아주 좋은 제도가 아닙니까. 하다 못해 손톱만한 희망이라도 심어주어야 이 나라 모든이가 공평한 기회를 갖는다고 착각을 할 테니 말입니다."
그 말에 관청장의 표정이 조금은 풀어지는 듯 하더라.
"그건 그렇고 경부장 그 놈이 아무런 연줄도 없이 홀로 이 곳에 온 것이라면 겁낼 것이 무엇이 있는가. 그냥 쳐 내면 그만이지 않나."
관청장의 말에 토티오 행감이 쓴 나물이라도 씹은 듯 입맛을 다시며 대꾸한다.
"아시다시피 놈이 술법을 씁니다."
토티오 행감이 말을 하는데 옆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마우킨 병부장이 슬쩍 손을 내밀어 안주를 하나 집어 먹다가 관청장의 매서운 눈치를 받고는 손을 거둔다.
"그래, 그 때 병부장이 매복해 놓은 병사들을 그 쥐새끼 같은 경감 놈이 술법을 써서 막았다고."
"예, 놈이 술법을 사용하는 자일줄은 저도 차마 알지 못하였습니다."
슈미트 관청장이 갑자기 무릎을 탁 치며 밝은 표정으로 묻는다.
"관청 관리를 상대로 술법을 사용한 것을 빌미로 놈을 파면시킬 수 없는가. 술법을 허락 없이 사용하는 것은 국법으로 금지 하고 있을 터인데."
"허나 그것을 걸고 넘어지면 우리가 병부 병사를 자객으로 보내 경부장을 살해하려 한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이 때문에 오히려 우리뿐만 아니라 도지사 어른까지도 조정 판서들로부터 큰 문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숙부님."
토티오 행감이 고개를 숙이고 나즈막히 조언하니 화가 난 슈미트 관청장이 에이 하며 주전자를 병부장에게 집어 던진다.
"내 도지사 어른을 만나야겠네. 이대로 저 근본 없는 놈이 맘대로 목포 바닥을 헤집고 다니게 할 수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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