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6일 금요일

16. 시위

대 학당 바하이트가 자리하고 있는 너른 지방의 큰 고을 광주의 관청 앞에서는 며칠째 서생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었으니 며칠 전 바하이트에서 강연을 하려던 이 시대의 마지막 지성으로 추앙받는 제임스 노엄 선생이 광주 관청 병부 소속으로 보이는 괴한들에게 암살을 당할 뻔 한 일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하고 있음이라. 이에 광주 관청의 하급 관리들이 시위 현장에 나와 이번 사건은 광주 관청과 연관이 없다고 해명하였음에도, 사로잡힌 괴한들 중 하나에게서 발견된 광주 관청의 병부 소속임을 나타내는 명패 때문에 시위하는 서생들은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더라. 며칠째 이어지는 대 학당 서생들의 시위에 무슨 일인가 하여 지나던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관청 인근 상가의 상인들 하며 주변에 기거하는 백성들까지 모두 구경하러 모여드니 관청에 업무를 보기 위해 관리들이 드나들기가 힘들 정도였다. 오늘도 바하이트의 정의감 넘치는 한 서생이 관청의 대문앞에서 해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관청의 책임자께서는 이 일에 명확히 해명을 해 주시오. 배운자들의 정신적 스승이요, 이 시대의 마지막 지성이신 노엄 선생을 해하려 한 이유가 무엇이오!"
계속되는 소란으로 몇 번이나 나와 해명을 하였건만 여전히 그칠줄 모르는 요청에 관청 관리 하나가 나타나 다시 한번 똑같은 해명을 늘어놓는다.
"몇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소, 범인은 우리 관청과 관련이 없는 자이고, 병부에서 추궁하는 중이오. 그러니 서생들께서는 시위를 그만두고 학업의 장으로 돌아들 가시오."
관리의 말에 몇몇 서생이 그를 지탄하며 소리를 친다.
"소지품에서 광주 관청 병부의 명패가 나왔거늘 어찌 관련이 없다고 하는거요. 광주 관청에서는 힘 없는 백성들을 대변하고 등불이 되어주시는 노엄 선생을 경계하여 살해하려 한 것이 아니오! 이는 우리 깨어있는 사상의 바하이트 학자들과 학생들에 대한 공격이나 마찬가지올시다!"
관청의 관리도 속이 부글거리는 듯 시뻘개진 얼굴에 인상을 쓰며 몇번씩이나 허리춤의 목봉을 쥐었다 놓았다 하다가도 이 서생들이 소위 가진 집안의 자제들이요 장차 고위 관리에 등용되는 과정에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쉽게 손을 뻗지 못하더라. 물론 여기 서생들이 모두 귀한 집안 자제분인 것은 아님을 알고 또 등용시험이라는 바늘문을 통과하기 위하여 빚을 내어 학문을 익히는 천한 집안 자식들도 있음을 잘 알지만, 만에 하나 휘두른 목봉이 귀한 집안 자제분께 날아가 맞는 날에는 제 자신 신상도 성치 못하리라는 걱정에 속만 앓고 있음이라.
"거 학당 서생들께서 백번 옳은 말씀들만 허시는 구먼."
이러한 관리들의 속 앓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행색이 허름한 구경꾼이 유릿장 같은 긴장의 끈을 끊는다. 이에 몇몇 민초들이 거들고 나서며 불길에 기름을 붓는다.
"옳소, 어디 이 나라의 높으신 분들 중에 우리같은 밑바닥 놈들 생각해주는 이가 노엄 선생 말고 누가 있었소."
"우리도 노엄 선생을 해하려 한 것에 대한 해명을 들어야겠소!"
광주 관청 대문 앞의 무리들 중 저기 멀리서 구경하고 있던 평민들이 하나 둘씩 소리를 치며 나서니 그 분위기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달아오르는 것이었다. 허나 이들이 깨버린 유릿장 같은 긴장의 끈은, 높은 집안의 재산과 계급으로부터 보호받는 바하이트의 서생들과는 다르게,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관리들의 앙갚음을 받더라.
"이 천한 것들이 무얼 믿고 감히!"
바하이트 서생들을 저지하던 광주 관청의 병사 하나가 끄트머리만 만지작 거리고 있던 목봉의 손잡이를 단단히 쥐어 빼 들고는 바로 앞에 있는 사내의 머리를 거칠게 딱 하고 내리친다. 벼락같은 목봉 세례에 제일 먼저 나섰던 사내가 어이쿠 하고 쓰러지자 내내 속앓이를 하던 다른 병부 병사들도 달려와 일제히 목봉 세례를 퍼붓는다. 뒤에 동조하며 소리내던 자들은 얼굴이 시퍼래져서는 어이쿠야 하며 군중 뒤로 흩어져 도망간다.
"누가 네놈들에게 시위할 권리를 주었더냐! 옛끼, 이놈아 이놈아."
멋 모르고 나선 사내를 향해 내리치는 병사들의 매질이 어찌나 거세던지 지금까지 당당히 시위를 하던 서생들 마저 목봉이 사내에게 내리꽂힐때 마다 움찔 움찔하며 몸을 주춤인다. 매를 맞는 사내는 상처가 터져 피를 흘리면서 큰 자룻더미 마냥 바닥에 웅크리고 엎드려 쏟아지는 목봉들을 받아내고 있는데 어이쿠 살려줍쇼 소리가 신음마냥 절로 흘러 나오더라. 이 끔찍한 모습에 몸을 움츠리던 바하이트 서생들 사이에서 어떤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병사가 내리치는 목봉을 턱 하고 잡아채니, 나무에 올라 노엄 선생의 강의를 듣다가 나무에서 떨어진 바로 그 청년 서생이렷다.
"그만들 하시오, 이러다 사람 잡겠소."
귀해 보이는 옷에 두꺼운 서책을 낀 것으로 보아 있는 집안의 서생 분이신가 하는데, 참아왔던 매질을 바로 멈추려니 화가 덜 풀린 것인지 숨을 씩씩대던 다른 병부 병사가 서생에게 따지듯이 대꾸한다.
"나라의 기강을 우습게 보는 이런 놈들은 좀 맞아야 하오."
병부 병사들이 다시 매질을 하려 목봉을 치켜 드는데 서생이 매맞던 사내 앞을 몸으로 가로막아 서며 호통친다.
"어디 그렇다면 나도 때려 보시오, 관리나 양반집 자제들에게는 손하나 못대면서 힘없는 백성은 그리 쉽게 매를 드니 어찌 그리 못났소. 노엄 선생께서 이르시길 사람이란 자고로 계급의 위아래는 있다고 하나 존엄의 위아래는 없다고 하셨소."
당당한 서생의 호통에 병부 병사들이 난처해하며 서로를 쳐다보더니 이 자를 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며 목봉 치켜든 손을 움찔 움찔 거린다. 이 때 관청 대문이 열리며 안에서 관청 고위 관복을 입은 자가 향리 여럿을 대동한 채 모습을 드러내었다.
"내 이곳 광주 관청장올시다. 바하이트 서생들은 들으시오."
그의 등장에 관청 앞의 구경꾼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히며 예를 취한다.
"시위가 소란스러워 직접 해명하러 나왔소."
관청장의 등장에 모든 소란이 정리되고 서생들은 그의 해명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인다.
"이번 노엄 선생 사건에 대해서는 나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오. 내 전라 도지사 어른께 이 사태에 대해 보고하였소이다. 분명히 말해 둘 것은 노엄 선생을 살해하려 한 자는 광주 관청의 병부 명패를 지녔지만 우리 관청에 소속된 자가 아니었소. 이 문제는 도지사 어른께서 조만간 조정의 참판들과 우리 전라 출신의 좌의정 대감을 비롯한 삼정승 대감께 아뢰어 판결을 요청할 예정이오. 그러니 이쯤하고 다들 돌아가시오."
간단히 해명을 마치고 향리들의 호위를 받으며 관청 대문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던 관청장이 걸음을 뚝 멈추고는 다시 뒤를 돌아보며 매 맞던 사내를 막아선 그 서생에게 묻는다.
"거기, 그대는 어디의 누구신가."
광주 관청장의 물음에 서생이 가로채어 뺏어든 목봉을 바닥에 댕그렁 내려 놓으며 답하였다.
"목포 양을산에서 바하이트로 유학을 온 플럼 가문의 드레이크 플럼이오."
플럼이라는 말에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하매 서생에게 목봉을 치켜 들었던 병부 병사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새파렇게 질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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