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9일 월요일

17. 청탁

이 나라가 어떤 모양새로 되어 있는지를 한번 살펴 보면, 동과 서와 남이 바다에 접해 있고 북으로 넓은 대륙이 뻗어있으나 반도가 대륙으로 이어지는 그 사이 영토에 북쪽에는 다스림을 받지 아니하는 큰 나라가 있어 영토가 뻗어 나가지 못하고 대국과 이 나라 사이에 반도 북쪽을 차지하는 북국이 있으니 말 그대로 반도의 남쪽 절반의 영토만 가진 가두어진 나라의 형세라. 북국의 아래로 임금이 기거하는 궁이 있다 하여 서울이라 부르는데 서울이 포함된 곳을 경기 지역이라 하더라. 경기의 동쪽으로는 큰 산맥이 뻗어 내려와 온 천지 기암과 수풀로 이루어진 산악지역인 강원이 자리하고 있고 경기의 남쪽으로는 산물이 풍족하여 백성들이 느긋하다고 소문난 충청이 있더라. 반도의 남쪽 나머지 지역을 좌우로 갈라 우측의 험한 지역을 경상이라 하고 좌측의 너른 지역을 전라 라고 하니 이곳 전라가 지금 이야기의 무대라. 너른 지역 전라는 다시 긴 산맥을 가운데 두고 북부와 남부로 나뉘는데 전라 남부에는 지금껏 이야기 된 목포와 광주가 있고 산맥의 위쪽인 북부에는 논산 익산 김제 정읍으로 이어지는 긴 평야와 더불어 너른 지방 광주 남부와 북부 전체를 아우르는 관청인 전주 관청이 있더라. 전주 관청은 전주 고을을 관할하는 것과 더불어 너른 지방 광주 전체를 관할하여야 하는지라 이 곳은 관청장 대신 전라를 대표하는 전라 도지사가 관청장의 자리에 있다. 도지사는 모든 관청장들을 대표하고 너른 지역 전체를 보살펴야 하는 자리라 주기적으로 각 고을들을 순시하는데 이 순시 행사를 유난히 기대하고 반기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전라 남부의 끝 고을 목포 관청장 슈미트였다. 슈미트 목포 관청장은 거대한 호위병단과 관리행렬을 대동한 전라 도지사가 너른지역 모든 고을을 순시하고 마지막으로 목포에 입성하였을 때 발벗고 나서며 환영을 하고 극진히 모시었다. 도지사가 목포에 머무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망월관의 미녀들과 고급 술로 대접을 하고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으랴 싶어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뵈어 안부를 물으니 그 어느 곳에서 보다도 극진한 대접에 전라 도지사가 어찌 슈미트 목포 관청장을 아끼지 않겠는가. 전라 도지사의 목포 관내 순시 일정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에, 여느 때처럼 술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망월관에서 슈미트 관청장이 전라 도지사에게 어렵사리 마음에 품고 있던 말을 꺼내려 간을 본다.
"도지사 어른, 머무는 동안 불편하거나 하지는 않으십니까."
슈미트 관청장이 양 팔에 여인들을 끼고 시시덕 거리며 노는 전라 도지사에게 술을 한잔 바치며 묻는다.
"내 너무 극진히 대접을 받아 오히려 황송하구만. 너른 지방을 통틀어 이곳 목포 만큼 편하고 즐겁게 순시를 하는곳이 없네."
도지사가 받아든 술을 한번에 쭉 들이기며 잔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귀한 술이 채워지고, 한 방울에 싼 한말 값은 나가는 귀한 술이 도지사의 허연 수염 아래로 뚝뚝 흘러 내리자 양 옆에서 기녀들이 그라도 맛보려는 듯이 달려든다. 그 모습에 도지사는 껄껄대며 웃기 바쁘더라.
"이리 큰 대접을 받았으니 내 언젠가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언제라도 곤란한 일이 생기거든 말하시게, 내 꼭 힘을 보태 줄 터이니."
"저, 그래서 말씀이온데..."
슈미트 관청장이 고개를 살짝 꼬며 말꼬리를 흐리니 도지사가 눈을 흘겨뜨며 관청장의 태도를 살피며 웃는다.
"관청장께서 이미 청이 있는 모양이구먼. 무엇인가 고것이, 속시원히 말해 보시게."
도지사가 넉살 좋게 물으니 슈미트 관청장은 옳다구나 하며 맘속에 품고 있던 고민을 늘어 놓는다.
"저희 목포 관청에 두달 전 경부장 자리가 하나 났었던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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