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31일 수요일

18. 감찰관 출두

목포 관청의 경부장 저스틴 로우 경감은 아침 일찍 관청으로 출근하여 어젯밤 다 쳐 내지 못한 업무를 다시 꺼내어 보는데 난데 없이 관청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란이 일며 관청 향리들이 동분서주 하더라. 이에 경부장 저스틴은 경부 청사 앞마당을 요란하게 가로질러 뛰어가는 향리 하나를 불러세워 묻는다.
"아침부터 또 무슨 소란인가."
"전라 도지사께서 목포 관청의 감찰 업무를 위해 지금 관청 앞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속히
도지사 어르신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관청장 나리의 지시입니다요."
저스틴 경부장이 훑어보던 장부의 끝에 곧은 글씨로 서명을 하고는 거칠게 탁 하고 덮더니 그 옆의 다른 장부를 꺼내어 펼치며 화를 낸다.
"나라의 관리가 나랏일을 하러 오는데 무슨 환영을 한다고 그리 호들갑이란 말이냐!"
향리가 어찌할바를 몰라 우물쭈물하며 곤란해하자 저스틴 경감은 손을 휘 저으며 말하였다.
"알겠으니 가서 일 보거라."
경감의 말에 향리는 허리를 꾸벅 숙여 예를 취하고는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하더라.

잠시후 목포 관청의 경부 청사 중문이 덜컥 하고 열리면서 허연 수염을 부채처럼 늘어뜨린 비단 관복 차림의 전라 도지사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의 왼쪽으로 체격이 다부지고 피부가 거무튀튀한 사내가 따르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한눈에 보아도 너무나 익숙한 얼굴인 목포 관청장 슈미트가 허리를 반쯤 숙인 채로 그의 발길을 따르고 있더라. 피부가 거무튀튀한 사내는 둥근 관모를 쓰고 기다란 검을 옆에 찼는데 그 외관으로 풍기는 기개가 아무래도 상당한 무예를 익힌 자로 보이더라. 이들의 뒤로는 목포 관청 행부장 토티오 행감, 병부장 마우킨 병감, 그리고 도지사의 양 옆 자리를 차지한 두 인물의 수하로 보이는 사내들, 그리고 그들의 뒤로 목포 관청의 각 부서 행사장들과 병사장들이 줄을 지어 따르니 그 대열이 길고 호화로와 마치 나라의 임금이라도 행차한 듯 하였다. 도지사 행렬이 목포 관청 경부장 저스틴 경감이 업무를 보고 있는 경부관 앞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니 향리 하나가 몸을 돌려 큰 소리로 도지사의 출두를 알린다.
"목포 관청 경부의 장이신 저스틴 로우 경감은 전라 도지사 어른의 감찰을 받으시오."
향리의 전언에 도지사가 입꼬리를 한껏 내리깔며 거드름을 피운다. 헌데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눈치를 살살 보던 향리가 다시 한번 큰 소리로 도지사의 출두를 알리는데도 여전히 안에서는 대꾸가 없다. 상당히 기분이 상한 듯한 도지사가 콧잔등을 찌푸리며 슈미트 관청장을 내려보자 이번에는 슈미트 관청장이 체면도 없이 앞으로 뛰쳐나와 경부관 안쪽을 향해 화를 낸다.
"경부장은 어서 나와 도지사 어른을 뵙지 아니하고 무엇하는가!"
슈미트 관청장의 호들갑에 갑자기 경부관 문이 벌컥 하고 열리더니 저스틴 경감이 모습을 드러내며 느긋하게 예를 취한다.
"목포 관청 경부장 저스틴 로우입니다. 바삐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다 보니 조금 늦었습니다."
저스틴 경감이 능글맞은 태도로 도지사를 맞으며 고개를 드는데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도지사나 관청장 보다도 함께 따라온 관모에 검을 찬 그 거무튀튀한 피부의 사내렷다. 관모의 사내는 이 곳 경부관 내로 들어서자마자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검집 끝으로 이것 저것을 들춰보며 거들먹 거리고 있었던 것이라. 저스틴 경감이 관모의 사내를 불편하게 바라보니 도지사가 턱을 한 껏 당긴 거만한 자세로 수염을 쓸며 말을 한다.
"저이는 신경쓰지 마시게. 전주 관청의 병부장으로 있는 자인데, 이번 너른 지방 순시에 내 호위를 맡겼는데 성격이 거칠고 포악하니 그냥 그러려니 하게나."
도지사의 말은 얌전히 자신의 명을 따르지 않으면 저 거칠고 포악한 하수인으로 하여금 혼쭐을 내주겠다는 뜻이리라.
"여봐라, 경부관 안에 들어가 경무 장부를 모두 내오너라. 여기 이 저스틴 로우 경감께서 누구보다도 국법을 존중하고 규율에 충성한다 들었으니 경무에 있어서 한치의 오차라도 발견될 시에 내 전라 도지사의 관찰사 권한으로 엄히 문책 할 것이로다!"
도지사가 명하니 경부관 앞에 있던 경부 향리들이 우물쭈물 하면서 저스틴 경감의 눈치를 본다. 경감이 아무런 대꾸가 없자 눈치를 보던 경부 향리 하나가 장부를 가져오려고 몸을 돌리는데 저스틴 경감이 허리를 숙인 채로 경부 향리에게 소리를 친다.
"멈추거라. 목포 관청 경부의 경무 장부를 아무런 근거도 없이 함부로 내 보일 수는 없다."
그리고는 도지사를 향해 말을 한다.
"도지사께서는 절차에 맞게 감찰을 하시지요, 이렇게 무턱대고 찾아와 장부를 내보이라고 하는 법도는 없습니다."
경감의 명에 경부 향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안절부절 하는데 경부관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관모의 사내가 경부 향리에게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대차게 발길질을 하며 소리를 친다.
"이 버러지 같은 놈이 가져오라면 가져올 것이지 말을 안들어!"
졸지에 발길질을 당한 경부 향리가 아이쿠 하며 바닥을 뒹구는데 관모의 사내가 쓰러진 향리 앞에 쪼그려 앉아 향리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하였다.
"도지사 어른께서 장부를 가져오라잖아."
경부 향리가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감싸쥐고는 아이고 살려주십쇼 하고 애걸 복걸을 하니 옆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저스틴 경감이 넘어진 경부 향리에게로 다가와 관모 사내의 팔을 조심스레 치우면서 입을 연다.
"그만 하시지요. 너는 들어가 하던 일을 마저 보거라."
저스틴 경감이 경부 향리의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주며 명하니 경부 향리는 잽싸게 허리를 굽혀 예를 취하고는 경부관 안으로 뛰어들어가더라. 단번에 애송이 취급을 당한 관모의 사내가 콧등을 찌푸리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스릉 뽑아들더니 저스틴 경감의 목을 겨눈다.
"이 피래미 같은 놈이 한낱 경부장 자리에 앉았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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