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월관의 여인이 안내한 곳은 요정 가장 깊숙한 곳에 특별히 마련된 별채였더라. 저스틴 경감이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행부장 토티오 행감이 오른손으로 술을 들이키며 왼손으로 어서 들어오라며 손짓을 한다.
"어찌 이리 늦었는가, 이리 들어와 술부터 한잔 받으시게!"
경감이 행감의 맞은편 방석위에 옷 뒤자락을 털고 앉으니 미리 와 있던 기녀들이 양쪽으로 들러 붙어 술을 따른다. 이에 경감이 기녀에게서 술병을 슬그머니 뺏어 들며 말하였다.
"내 술은 내가 부어 마실테니 너희는 이만 나가거라."
경감의 말에 양쪽에 바싹 붙어앉은 기녀 둘이 토티오 행감의 눈치를 스을쩍 본다.
"어허 이사람, 여기 이년들이 망월관에서 둘째 가라면 서럽다고 징징대는 아이들이라네. 내 일부러 신경써서 제일가는 아이들을 모조리 이 자리에 불렀으니 내 체면도 좀 봐 주시게."
토티오 행감은 제 옆에 앉은 기녀의 엉덩이를 툭툭 치며 눈을 찔긋 해 보인다. 그러자 행감의 옆에 있던 기녀도 저스틴 경감의 옆으로 바싹 붙어 술병을 내 민다.
"행부장 나리께서 이리 신경 써 주시는데 제 술잔 한잔 받으셔요."
기녀 셋이 바싹 붙어 술병을 쥐고 들이대니 저스틴 경감도 마지못해 억지로 술을 한잔 받아 들었다. 산 길을 걸어 올라 오느라 슬쩍 목이 타던 차에 잔 위에 찰랑거리는 시원하고 향긋한 술을 보니 마른 침이 꿀떡 넘어가더라. 경감은 일단 술을 한잔 시원하게 들이키고는 잔을 내려 놓으며 말하였다.
"그래, 가난에 허덕이는 백성들은 피고름을 짜내어 하루를 연명하는데, 행감께서는 이런 화려한 요정에서 계집들을 끼고 거나하게 술이나 들이키면서까지 하실 이야기가 대체 무엇입니까?"
경감의 말에 토티오 행감의 표정이 살짝 찌푸러진다.
"아이 뭐가 그리 급하셔요, 여기 안주도 좀 드시면서 이야기는 천천히 나누셔요."
옆에 앉은 눈치빠른 기녀가 젓가락으로 조그만 약과를 하나 집어 경감의 입에 가져다 대니 경감은 단호하게 손바닥으로 스을쩍 밀어내었다.
"행감께서 내게 중한 말씀을 하시겠다고 하니 이제 너희들은 나가거라."
저스틴 경감의 대쪽같은 태도에 기녀들이 다시 한번 토티오 행감 눈치를 보자 이번에는 행감이 경감의 편을 들어준다.
"그래 그래, 우리 로우 경감께서 무언가 급한 일이 있으신가 보구나. 내 잠시 경부장과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너희들은 잠시 나가 있거라."
토티오 행감의 말에 기녀들이 예에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깊숙히 인사를 하고 하나 둘 씩 방을 나갔다. 마지막 기녀가 방을 나서면서 문을 조심스레 닫으며 인사를 하자 토티오 행감은 옳지 옳지 하며 기녀들의 기분을 맞추어 준다. 기녀들이 모두 나가고 저스틴 경감이 술을 한 잔 부어 마시니 토티오 행감이 경감의 빈 잔에 다시 술을 채워주며 말을 한다.
"다름이 아니라 저스틴 경감, 혹시 일전에 양을산 너머 북쪽 상공 단지의 지주를 직접 만난 적이 있는가."
토티오 행감의 질문에 경감의 눈매가 잠시 사나워 지더니, 들고 있던 술잔을 단숨에 비우며 대꾸한다.
"연산 단지의 지주가 세금을 체납하여 직접 찾아가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연산 단지의 지주가 우리 너른 지방의 도지사 어르신의 사위라는 것도 알고 있었는가."
토티오 행감이 몸을 가까이 숙이면서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다시 묻는다. 허나 저스틴 경감의 자세는 여전히 꼿꼿하더라.
"목포 관청의 경무를 책임지는 경부장이 체납자를 만나 세금을 받아오는데 체납자의 장인이 누구인지도 알아야 한단 말입니까."
"어허 이사람 참 답답하네, 어찌 이리 정치를 모르시나. 게다가 그런 일은 아래 향리들에게 시키면 될 것을 어찌하여 경부장이 그런 천한 일에 손수 나선단 말인가."
"아랫 것들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한 일은 그 윗선이 책임을 지는것이 도리입니다. 행부장께서는 이러한 공무의 기본도 벌써 잊으신겁니까."
경감의 대꾸에 토티오 행감이 고개를 절래 저으며 말을 한다.
"어찌 되었건, 내 이번 건은 내 선에서 잘 매듭 지었으니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시게."
행감은 몸을 뒤로 홱 빼며 술을 한잔 부어 마셨다. 행감의 태도에 저스틴 경감이 술상을 탁 치며 거세게 묻는다.
"행부장께서는 저더러 체납을 눈감아 주라 이 말씀이십니까."
그 바람에 토티오 행감이 마시던 술을 콜록 하며 되 뱉는다. 행감은 옷에 묻은 술을 에이 하고 닦아내며 인상을 쓴다. 하지만 저스틴 경감의 표정은 여전히 단호하다.
"지주는 소출의 일부를 세금으로 관청에 바치는 것이 이 고을의 법규올시다. 이 법규는 다름아닌 행감께서 몸담고 계신 행부에서 정한 것이고 지주가 누구건 간에 예외가 없어야 합니다. 우리 경부는 행부가 정한 그 법규를 준수하고 이를 잘 지킬 수 있도록 인도할 의무가 있습니다. 물론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는 추심을 하거나 형벌을 내리기도 하지요. 헌데 이를 눈감아 주라는 것은 저더러 직무를 게을리 하라는 것입니까."
토티오 행감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경감을 위해 하는 말이네. 잔 말 말고 내 말을 따르게."
행감은 몸을 반쯤 돌려 술을 홱 들이킨다.
"목포 관청은 관청장 어른 아래로 경부와 행부 그리고 병부의 삼부로 분리되어 독립적인 지위를 가집니다. 저는 행감의 명령을 따를 이유가 없습니다."
경감의 말에 토티오 행감이 술잔을 거칠게 내려 놓으며 묻는다.
"그 말은, 관청장 어른의 말이라면 따르겠다는 뜻인가."
그 때 바깥쪽에서 살짝 소란이 일더니 예의 그 하얀 옷의 여인이 별채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서는 밖의 누군가에게 깊이 인사를 하며 말하였다.
"이리로 드시지요, 관청장 나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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