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4일 목요일

7. 마찰

예상치 못한 슈미트 목포 관청장의 등장에 저스틴 경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깊숙히 예를 취하며 방 안으로 맞이한다. 토티오 행감은 방으로 들어서는 관청장에게 자신이 앉았던 상석을 내어주며 안내를 하고, 슈미트 관청장은 넉살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자리를 차지하고 앉더라. 이 때 저스틴 경감이 몰래 곁눈질로 토티오 행감의 표정을 살펴 보니 당황한 기색이 전혀 없는 것이 이미 관청장의 합석이 약속되어 있는 눈치였다.
"그래, 서로 이야기는 잘 되었는가."
슈미트 관청장이 토티오 행감의 술을 받으며 묻는다.
"이예 사또께서 친히 이렇게 자리까지 하셨으니 저스틴 경감도 잘 알아들었을 겁니다."
토티오 행감이 술병을 거두며 저스틴 경감에게 눈치를 준다. 그러나 저스틴 경감은 자리에 앉고 나서도 여전히 기색이 불편하였다. 이에 관청장이 토티오 행감에게 받은 술을 한번에 털어마시고는 빈 술잔을 저스틴 경감에게 내 밀며 한잔 받으라 한다.
"내 경감의 대쪽같은 성품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네만, 이번 일은 나도 행감과 뜻을 같이 하니 나의 부탁이라 생각하고 받아 들여 주시게."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애매한 시간이 미동 하나 없이 흘러가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토티오 행감이 사또의 잔을 어서 받게 하고 질책하려는 찰나에 저스틴 경감이 난데없이 팔을 뻗어 토티오 행감 앞에 놓인 술병을 집어들며 정중하게 말을 한다.
"제 술 한잔 받으시지요 관청장 나리."
저스틴 경감의 권주에 살짝 당황한 관청장은 어 어 그래 그래 하며 술을 받는다. 이것이 동의를 뜻하는 것이리라 생각하며 기분좋게 술을 받아든 관청장이 새로 채운 술을 입에 가져가려는데 경감이 술병을 곱게 내려 놓으며 입을 연다.
"사또의 뜻은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관청장이 마시려던 술잔을 뚝 멈추고 눈을 부릅뜬다. 이에 옆에서 배실거리며 웃고 있던 토티오 행감이 경감의 이 말에 버럭 화를 내며 소리친다.
"이보시게 경부장!"
슈미트 관청장은 마시려던 술을 얌전히 상 위에 내려놓으며 다른 손으로 토티오 행감을 저지하며 말하였다.
"그게 진정 그대의 뜻인가."
관청장의 낮은 목소리에 이것이 마지막 권유라는 의미가 숨어있더라. 하지만 저스틴 경감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그러합니다."
슈미트 관청장의 표정이 누그러진다.
"경감의 입장이 그러하다면 내 이해하리다."
토티오 행감은 경감에게 굽히고 들어가는 슈미트 관청장의 태도가 의아하다. 나서서 이유를 물어보려고 하였으나 관청장의 표정도 사뭇 진지하니 괜히 끼어들 상황이 아니구나 싶어 말을 거두었다.
"저는 이 자리와 어울리지 않는듯 하니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편히 즐기다 가십시오, 관청장 나리."
저스틴 경감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예를 하고는 그대로 방문을 열고 별채를 떠났다.

경감이 자리를 떠나고 나니 종전의 기녀들이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와 관청장과 행감의 술시중을 든다. 한동안 입을 열지 않던 토티오 행감이 관청장에게 술을 한잔 권하며 넌지시 묻는다.
"숙부님, 저 놈을 저리 보내도 되는거요?"
경감이 빠진 자리는 어째 좀전과는 다른 요상한 기운이 돈다.
"제 놈 뜻이 그렇다는데 어찌하겠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차피 이쪽 바닥이 한다리 건너면 다 사촌이요 두다리 건너 봐야 기껏 팔촌일터인데 다 같이 뻔한 친척끼리 저렇게 까다롭게 굴 필요가 어디 있소."
토티오 행감이 거칠게 술을 털어 마시고는 상 위에 잔을 탁 내려 놓으며 에이 하고 투덜거린다. 이에 관청장이 입꼬리를 내리깔며 나지막히 대꾸하기를,
"저 놈은 우리 핏줄이 아니야."
관청장의 그 말에 행감이 눈을 번쩍 뜬다.
"아니 그럼 피 한방울 안 섞인 놈이 이 바닥에 발을 들였단 말입니까. 대체 무슨 수로..."
"나라의 권력을 쥐고 싶어하는 이가 한 핏줄 뿐이겠느냐. 아마도 다른 지방 참판 중에 어느 종가 놈의 친척쯤 되겠지."
"아무리 그렇대도, 저 놈이 이 목포 바닥을 휘젓고 다니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토티오 행감의 불평에 슈미트 관청창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걱정말거라, 내 병부장에게 뭘 좀 시켜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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