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5일 금요일

8. 어둠속의 불길

분주한 발걸음이 산길을 오르고 있었는데 사람 수가 일곱이요 그 중 하나는 나머지 여섯보다 그 움직임이 굼뜨더라. 허나 굼뜬 자의 손짓 하나에 나머지 여섯이 일사분란 움직이니 아마도 그 자가 이 무리를 지휘하는 이 무리의 주동자렸다. 이미 해가 진지 오래되어 산속 길은 어둑한데 길을 따라 환한 등불이 주변을 훤히 비추고 있어 바삐 산을 오르는 무리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잘 보이더라. 동작이 재빠르고 절도가 넘치는 것이 분명 무예를 익힌 자들인 듯 한데 하나같이 검은 옷을 갖춰 입고 동작이 수월토록 팔 다리 천으로 동여매니 그 모습이 누가 봐도 사람 목숨 거두러 가는 자객의 모습이다. 얼굴을 안 보이려 콧등까지 올라오는 복면들을 하고 보니 그 누구의 목숨이든 쥐도 새도 모르게 거두어 갈 듯 으스스 한 모습이렸다.
산 중턱 즈음에서 동작이 굼뜬 자가 숨을 헐떡이며 쫒아 올라와 휘익 하고 손짓을 하자 나머지 여섯이 귀신처럼 길 가의 나무 뒤로 몸을 감춘다. 숨을 몰아쉬며 재바른 동작으로 근처의 등불들을 꺼 버리니 주변이 어둑하여 사물을 분간하기 힘들게 되었다.
"이 곳이 적당할 것 같소."
무리를 지휘하는 자가 입을 연다.
"여기서 처리하십시다. 일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우리는 물론이요, 줄줄이 골치아프게 되시니 실수가 없어야 할 것이오."

저스틴 경감이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산길을 내려오는데 하마터면 발을 헛디뎌 그대로 굴러 넘어질 뻔 하였다. 그런데 아무리 사색에 빠져 있었다 한들 발을 헛디딜만큼은 아니었다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아니 글쎄 한치 앞도 분간이 안될만큼 사방이 어두컴컴한 것이 아닌가. 등불이 훤한 양을산 하산길이 어찌 이곳만 이리 어두운가 하며 사방을 살피는데, 순간 눈앞에 시커먼 복면의 사내가 경감의 길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웬 놈이냐."
경감이 깜짝 놀라 물으니 길을 막아선 사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한다.
"홀로 산길을 내려오는 것을 보니 일이 잘 안풀린 모양이시오."
사내가 대뜸 경감에게 말을 건네는데 경감이 난데없이 큰 소리로 호통을 친다.
"네 이놈, 목소리와 머리 긁는 폼새를 보아 허니 관청을 나설 때 내게 말을 내어주던 그 행부 향리놈이로구나."
경감의 날카로운 호통에 사내가 슬쩍 당황한다. 잠시 안절부절 눈치를 살피던 사내가 홰액 하고 손짓을 해보이니 나무 뒤에 숨어있던 시커먼 사내들이 귀신처럼 나타나선 허리춤에 날 선 칼을 스스렁 뽑아들고 경감을 가운데 두고 둥그렇게 둘러싼다.
"행부장의 명이더냐."
경감이 근엄한 목소리로 앞에 선 사내에게 묻는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경감이 말을 이어가기를,
"이 자들을 데리고 조용히 돌아가거라. 윗선의 명이라 어쩔 수 없음을 충분히 이해하니, 내게 칼을 겨눈 것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겠다."
경감의 근엄한 태도에 칼을 든 사내 하나가 기분이 상했는지 턱 아래를 스윽 겨누며 끼어든다.
"거, 문과 출신 고위 관리께서는 무과 출신 병부 병사가 우습게 보이시는 모양인데 이런 몸 싸움에서는 칼이 붓보다 무서운 법이오."
달빛에 번뜩이는 칼날에 경감이 다소 긴장된 목소리로 다시 호통을 친다.
"어리석은 놈이구나. 네놈이 병부 관리라는 것을 드러낼 것이었으면 어찌 검은 옷을 입고 복면을 하였느냐."
경감의 호통에 칼을 겨눈 사내도 슬쩍 당황한다.
"보아허니 병부장도 이 일에 가담하였구나. 너희들도 병부장의 명을 따를 뿐이라 참작하고 죄를 묻지 않을 터이니 그냥 돌아가거라. 그러지 않으면 더 큰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칼을 든 사내까지 당황하여 주춤하자 안되겠다 싶었는지 앞에 선 사내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죽을 놈이 말이 많구나!"
앞에 선 사내의 거친 손짓을 신호로 하여 시퍼런 칼날들이 경감의 목으로 날아든다. 눈 앞에서 사람의 목이 떨어지는 것을 차마 못보겠던지 앞에 섰던 사내가 복면 사이로 눈을 질끈 감는 그 순간에 그야 말로 기가 차는 일이 벌어졌으니 아무래도 사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감 조차 못 잡을 것이로다. 칼날이 번개처럼 목으로 날아드는 그 찰나의 순간에 경감이 몸을 앞으로 신속하게 숙여 아슬아슬하게 칼날을 피하더니 그대로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앉아 양 손을 바닥에 짚으면서 무언가 알 수 없는 말을 짧게 중얼거리니 땅에서 거센 불길이 솟아오르고 돌들이 사방으로 튀면서 귀청이 찢어질 듯 굉음을 토해낸다. 발 바닥 아래서 솟아난 불길에 온몸이 휩싸인 사내들이 나 살려라 비명을 지르며 몸에 붙은 불을 꺼보고자 벌레처럼 땅바닥을 온데방데 비벼대며 굴러다니더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