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9일 금요일

21. 호미

광주 관청의 가장 깊숙한 곳, 경부 청사의 뒷편으로 볕 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곳에 죄인들을 가두어 두는 감옥이 있었으니 대학당 바하이트에서 끌려온 서생들이 모조리 이곳에 투옥되었다. 감옥은 돌을 쌓아 만든 단단한 돌벽에 겉에는 흙을 발라 단단히 굳혔는데, 죄인들이 바깥을 내다볼 수 있게 한 것인지, 아니면 바깥에서 죄인들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 것인지 그저 조그만 창에 단단한 나무창살을 박아넣어 조그만 빛이 새어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죄인 취급이오."
옥에 갇힌 바하이트 서생 하나가 조그만 나무 창살에 매달려 바깥을 향해 소리를 치니 마침 그 곳을 지나가던 어용군 장교가 나무 창살을 붙들고 있던 서생의 손가락을 목봉으로 딱 때려 떨구며 호통친다.
"반역자 놈들이 시끄럽구나. 네놈들은 내일 오전에 관청 앞 광장에서 모두 참수될 것이다."
장교의 말에 옥에 갇힌 서생들이 아우성을 친다.
"글 밖에 모르는 서생들이 무슨 반역을 했다는거요."
무언가 착오가 있는 거라 하소연 하는 서생부터 출신 가문을 대며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호통치는 서생까지 감옥 안은 소란스럽기 그지 없는데 바깥에서는 아무런 대꾸가 없다. 내일 오전에 참수를 한다는 흉흉한 말을 들은 서생들은 얼굴 색이 새파래지며 몸사래를 치고, 관청 대문 앞에서 보았던 관청 관리들의 잘린 목을 떠올리며 이것이 그저 서생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던지는 말이 아님은 확실타 하더라. 천지가 경동하는 날벼락 같은 상황에 그대로 바닥에 엎드려 우는 서생부터 창살 밖으로 욕지기를 하는 서생까지 아주 난리가 아니었다.
'여기서 이대로 영문도 모른 채 죽는 것인가.'
드레이크는 감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양 옆구리에 팔을 꼬아 끼고 이마를 벽에 탁탁 부딪치며 어찌하면 이 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였다. 허나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더해 보아도 방법이 떠오를리가 만무하더라. 감옥의 바깥에는 어용군들이 손에 든 횃불 만큼이나 이글거리는 눈으로 사방을 지키고 섰고, 감옥에서 경부 청사를 구분짓는 담벼락과 중문, 경부 청사와 관청 뜰을 구분짓는 또 하나의 담벼락과 중문, 그리고 관청 안과 밖을 구분하는 담벼락과 관청 대문까지 어디 하나 어용군들이 지키지 않는 곳이 없으니 그 누구라 하더라도 이 곳을 빠져나갈 수 있으랴. 무엇보다도 당장 이 감옥을 벗어나는 것 조차도 불가능한 일이더라.

시간이 흐르고 밤이 깊어지니 감옥 창살에 매달려 소리치던 서생들도 지칠대로 지쳐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고, 몇몇은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지친 몸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꾸벅 꾸벅 떨구며 졸기도 한다. 여전히 구석에서 이마를 탁탁 찧어대며 고민에 빠져 있던 드레이크는 이런 저런 생각 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문득 고향에 계신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대로 죽게 되면 목포에 계신 아버님이 얼마나 마음 아파 하실까. 어린 나를 키우다 돌아가신, 지금은 저승에 계신 어머님도 이리도 황당하게 목이 잘린 아들을 반겨주시지 않으실 것이야.'
드레이크의 사색이 아버지에서 어머니의 생각으로 옮겨가니 이마를 찧는 속도가 차츰 느려지더라.
'그래 어머님. 돌담을 쌓아 화단을 가꾸시던 어머님이 보고 싶구나.'
어느새 드레이크는 이마를 감옥 벽에 댄 채로 깊은 생각에 빠져 들었다.
'어머님은 항상 돌담 화단에서 내게 모종삽과 호미를 쥐어주시고는 가지고 놀게 하셨지. 화단 벽을 꾸며놓은 돌들 사이사이의 흙을 파내며 놀다가 화단 돌벽을 무너뜨려 혼쭐이 났던 기억이 나는구나. 그래, 그 호미라도 있다면 이 감옥의 돌벽도 어머니의 화단처럼 무너뜨릴 수 있으련가.'
드레이크는 반 쯤 눈이 감긴 채로 어릴적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데 지금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졸면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던 차에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드레이크가 쪼그려 앉아 이마를 대고 있던 그 감옥 구석에 난데없이 호미가 하나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분명 이 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는데 이 호미는 웬 것이란 말인가.'
드레이크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고 호미를 집어 드는데 온 몸에 힘이 빠지며 언젠가 느꼈던 그 무기력함이 다시 찾아 오는 것이었다. 이 무기력증은 지난 날 노엄 선생이 바하이트에서 강의를 하던 때에 나무 위에서 정신을 잃었을 때와 같은 것이더라. 드레이크는 순간 정신을 잃을 뻔 하였지만 억지로 정신줄을 붙들고는 부들거리는 손에 힘을 주어 감옥 벽을 호미로 턱턱 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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